고 김순철 회장님을 기리며
한국제지기술인 협회
회장 조욱기
골판지 포장 물류 11-12월호 2013년
너무 갑작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편찮으신 줄은 알았지만 몇 년은 아니 몇 달은 더 우리들 곁에 계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시니 황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난여름 지독했던 무더위도 한풀 가시고 날씨도 제법 선선해졌으니 제지기술인협회 임원들이 모여 병문안 가자던 것이 조문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좀 더 자주 찾아뵙고 하나라도 더 배우고 위로의 말씀도 전하고 하어야 하는 것인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다시 만나 뵐 수 없는 것을-- 암담하기만 합니다.
내가 회장님을 처음 만나 것은 1970년 국립공업연구소 제지연구실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당시 국립공업연구소장은 우리나라 제지계의 태두이신 이범순 박사님이었는데 김봉태 제지연구실장과 김순철 회장님은 전북대학교에서 이범순 박사님에게 사사한 애제자들로서 자연히 제지연구실에서 자주 회동하였고 특히 한국펄프종이기술협회(현 한국펄프종이공학회) 설립을 준비할 때는 내가 실무를 맡아 가까이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 까지 제지기술의 스승이시고 삶의 멘토였습니다.
회장님은 현장기술자이지만 아무도 따라 갈 수 없는 학구파였습니다. 당시에는 제지공부를 하고 싶어도 변변한 책 한권 없던 시절인데 외국 문헌을 뒤져 공부한 것은 알기 쉽게 요약하여 꼼꼼히 기록하였고, 관여했던 공장들은 공정을 스케치 하고 설비 목록을 작성하였으며 문제점 등을 메모하였습니다. 이런 기록이 커다란 파일로 5개나 됩니다.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열정이었습니다.
회장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산에 있는 북선제지(현 페이퍼 코리아 전신)에 입사하면서부터 무림제지, 삼화제지, 한국수출포장, 계성제지, 동일제지 등 국내 굴지의 제지회사들을 거치면서 평생을 제지업계에 종사 하였습니다. 회장님은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최고의 제지기술자가 이십니다. 제지기술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그분의 책들은 제지기술자들의 바이블 같은 것이었습니다. 기술서적 외에도 제지역사에도 관심이 깊어서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재해석하여 “제지역사 I, II”, “종이 이야기”등도 출간하였습니다.
나는 제지계에 입문할 당시에 회장님이 주신 “PAPER MACHINE” (후에 증보되어 “종이의 제조이론과 응용” 으로 출간)로 공부하였으며 공장생활을 하는 동안 내내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그 책을 펼쳤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회장님을 찾아 자문을 구했습니다. 회장님은 제지기술 뿐만 아니고 인생 상담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나 뿐만 아니고 많은 제지인들이 그분의 사무실에 들러서 한담도 하고 바둑도 두고 사랑방 같이 이용하였으며 그러다 때가 되면 밥도 사고 술도 사고 하셨습니다.
국내제지 산업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제지산업을 위해서 평생을 바쳐 온 수 많은 제지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사명감에 권혁용 회장님, 고 고오석 회장님, 황동기 회장님과 뜻을 합쳐 한국제지기술인 협회를 만드시고 초대회장으로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협회지를 발간하여 근대 제지역사의 생생한 기록을 남기고 2500여명에 이르는 제지기술인 명단을 손수 만드시기도 하셨습니다. 제지업계에 남긴 회장님의 업적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회장님은 포장분야에도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한국수출포장주식회사를 위시하여 여러 라이너, 골심지 제조회사와 골판지 제조회사에 관여하시어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주셨고 골판지에 관한 두 권의 저술을 남기셨습니다.
2010년에는 포장분야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지식경제부에서 주관하는 ‘2010 신기술 정부포상’에서 최고상인 장관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세대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위대한 제지인 중의 한분을 떠나보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제지 분야에 종사하는 한 곳곳에서 회장님의 자취를 만날 것이고 그리워 할 것이고 회장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회장님은 우리들 가슴 속에, 한국제지의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계실 것입니다.
2013년 10월 21일
한국제지기술인협회
회장 조욱기 올림
[故 김순철 회장 양력]
1932년 전북 부안 출생
1953년 이리공업고등학교 졸업
1957년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1955년-1979년 북선제지㈜, 무림제지㈜, 삼화제지(주),
한국수출포장공업㈜ 근무
1983년 한국펄프종이공학회 부회장
1983년-1990년 계성제지 그룹 기술 고문직 근무
1993년-1995년 강원대학교 제지공학과 강사
2007년-2011년 한국제지기술인협회 초대 회장 역임
2010년 ‘2010 신기술 정부포상’지식경제부
2010년-2013년 한국지기공사 회장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에 단둘인 어린 모자 갈라놓은 의정부 화마 (0) | 2015.01.24 |
---|---|
간병후기 (0) | 2014.03.03 |
탈고 (0) | 2014.01.20 |
새 생명의 탄생 (0) | 2013.05.19 |
운촌 황동기 자서전 출판기념회 축사 (0) | 2013.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