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살기 산에 가기

구름 속으로 간 월봉산

불고옹 2014. 11. 27. 14:15

구름 속으로 간 월봉산

 

2014. 11. 25. 화

느림보 산악회 따라서

 

안 가본 산을 처음 갈 때는 약간의 설레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월봉산은 그런 기대도 없었다.

산행지도를 보니 들목인 남령재가 해발 895m 가까이 되어

월봉산 정상이 1279mm 이니 동네 뒷산 가듯 400m 만 올라가면 되고,

칼봉산 까지만 좀 가파르고 거기만 가면 순탄한 능선길일 것 같아

편안한 산행으로 예상했다.

 

 

오전 중에 날씨가 개일 것이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짙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 들목인 남령에서

차 밖으로 나오니 바람마저 차가워

오늘 산행이 심상치 않을 예감이 들었다.

 

여니 산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비알을

가며 쉬며 숨을 돌리는 사이

느림보 식구들은 모두 앞질러 가고

오늘도 나 홀로 산행이 되었다.

 

 

그리 높지 않은 바위에 어설프게 메어 놓은

젖은 밧줄을 잡고 오르니 능선의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부터는 이제 좀 쉽겠구나 하는데

갑자기 안개 속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 길을 막고

계단을 내려가 빙 돌아 다시 올라간다.

구름 속을 그렇게 헤매다 보니 칼날봉이 나온다.

여기까지 1.1km를 오는데 1시간 15분이나 걸렸다.

 

 

산행은 순탄한 마루 금을 사색하듯 걷는 것도 좋지만

적당한 업 다운이 있는 암릉 산행이 더 재미있다.

진안 구봉산, 고흥 팔영산, 공룡능선 등등

그런 면에서 월봉산도 아주 재미있는 코스임이 틀림없다.

암릉산행이 대부분 암봉을 올라가 조망을 즐기고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고 하는데

월봉산 암봉들은 커다란 바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동구머니 놓여있어 올라가지 못하고 우회하는데

우회하는 등로가 장난이 아니다.

밧줄을 잡거나, 바위틈을 기거나, 나무뿌리에 매달리거나,

쓰릴 만점이다.

 

 

나는 혼자 가느라 사진도 못 찍었지만

청목님이 올린 사진을 보니

어려운 코스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저런 길을 나 혼자 잘도 갔구나 하니 스스로도 대견스럽다.

산행이 늦는 것은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노인네가 사고라도 나면 큰 사건이 되는 것이라

얼마나 조심했는지 모른다.

 

 

 

산죽이 보이고 억새가 나오길레 이제 좀 순탄하나 했더니

이내 양쪽이 아슬아슬한 칼날능선이다.

 

 

정상까지 800m 남았다는 지점을 지날 때

벌써 1시가 넘어 점심 먹을 시간이 없는데

큰 바위 밑에 바람을 피하여 후미팀이 기다리고 있는데

점심은 이미 다 먹고 나 때문에 판을 접지 못하고 있다.

강대장에게 커피 한 잔을 부탁하고

쵸코바 하나로 점심을 때웠다.

 

 

여기서 부터는 염선생님, 두발로님, 도미니카님과 동행하여

정상 인증샷도 찍고 외롭지 않게 하산했다.

정상에 오니 2시가 넘었다.

선두하고는 1시간 반이나 차이가 나니

느림보 따라 다니는 것이 점점 힘들어 진다.

 

 

올라갈 때는 힘들어도 내려올 때는 쉽다고 했는데

낙엽이 썩은 부엽토가 물에 졌으면

대천 바다의 머드보다 미끄럽다.

엉덩방아라도 찧으면 아픈 것은 둘째 치고

흙투성이 옷이 망신이라 하산 길도 조심 조심이다.

 

큰 목재에서 노상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아름다운 계곡길이다.

 

 

계곡 끝에 노상저수지가 있고

이내 마을이 나온다.

 

마을 산행안내판에서

청목님이 부러 사진 한 장을 찍어준다.

청목님의 사진 실력은 느림보에서 정평이 나있다.

 

 

뒤풀이에서 강대장님이 점심 굶었다고 밥 많이 먹으란다.

오늘도 산에서 길을 잃은 선두 몇 분이 늦게 와

간신히 꼴지는 면했다.

 

 

집에 와서 보니 호주머니에서 감 반쪽이 나온다.

강대장이 점심 때 후식으로 준 것인데

먹을 틈이 없어 잊고 있었다.

고마운 강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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