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살기 산에 가기

문장대에서 묘봉까지 고옹의 모험

불고옹 2010. 10. 7. 17:50

고옹의 모험(문장대에서 묘봉까지)


2010. 10. 05. (화)

느림보 산악회


이번 속리산 서북능선 산행은 작년에 화목고개-묘봉 산행이 아기자기하게 재미있어서 기대가 컸다. 더군다나 그동안 입산금지 구역이었다가 해지된 지 3개월 밖에 안 된다니 길이 험할 것 같아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하였다.

산행지도를 보니 화북분소에서 문장대까지 올라가는데 2시간30분이고 내려오는데 1시간30분으로 되어 있어 경사가 상당히 급한 것 같았다. 오르막에 약한 나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9시30분에 화북분소를 출발하여 올라가는데 길은 돌계단으로 잘 다듬어져 위험하지는 않으나 예상한데로 문장대까지 쉴 틈 없는 오르막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맨 꼴지로 올라가니 시간은 11시가 조금 넘어다. 산행지도에 나와 있는 시간에 30분이나 빨랐는데도 꼴지라니! 내가 늦은 게 아니고 느림보 식구들이 과속이다. 과속 딱지를 띄든지 해야지 ㅎㅎ--

 

 

오늘의 초대 손님 삐순이님 이랑 에쉴리님등 남아있는 산우들과 정상 표지석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잘 만들어 놓은 철 계단을 타고 문장대 바위위로 올라갔다. 40년 전에 왔을 때는 이런 계단이 없어 바위아래 매점에서 사이다 한 병 사먹고 간 기억뿐이었는데 바위 꼭대기에서 본 전망은 환상적이었다. 360도 사방이 빙 둘러 보이는데 태백산님 말씀대로 커다란 연꽃의 중심에 서있는 것 같았다. 문장대의 전망만으로도 이번 산행의 즐거움은 충분했다.

 


 

문장대에서 서북능선 길은 시작부터 험했다. 비에 젖은 부엽토가 얼마나 미끄러운지 슬라이딩 하듯이 내려와서는 다시 바위를 기어오르고 궁둥이를 비비며 내려오고 건너뛰고 매달리고 얼마나 긴장했는지 지금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려운 고비마다 카메라에 담았다면 멋진 산행기를 쓸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오늘 후미는 강대장님, 호위무사 태백산님, 다른 때는 늘 선두로 가서 산행 중에는 얼굴을 볼 수 없던 배고문님이 오늘은 어쩐 일로 후미로 끼었고, 산행이 처음인 처제분과 같이 온 유고문님,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이었다.

 

 

아마 문장대와 관음봉 중간 쯤 왔을 때, 문제가 생겼다. 어느 바위 밑에 오니 로푸가 제법 높게 메어 있고 암벽이 젖어 밧줄을 탈까 말까 망설이는데 배고문님이 안전하게 우회하자고 앞서니 유고문님과 처제가 따라 간다. 태백산님은 주저 없이 밧줄을 잡고 올라가고 다음에 강대장님이 밧줄을 잡으면서 나보다는 우회하라고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신다.

그런데 우회로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한참을 내려가도 돌아가는 길이 없고 길도 희미해진다. 할 수 없이 오던 길을 되짚어 오르니 밧줄 메 놓은 바로 옆에 바위사이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올라갔다. 30분 이상 알바를 하고나니 오르막에 약한 나는 이미 기진맥진이고 시간에 쫒기니 마음은 급했다.

 

 

시간도 1시가 지나 점심을 먹으려고 배낭을 푸는데 강대장님 전화다. 관음봉 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란다. 얼마를 더 가니 바위에서 강대장이 손짓을 한다. 토끼굴 같은 바위 밑을 기어나가 드디어 강대장과 합류했다. 멀리서 보니 관음봉위에 사람이 많아 거기 올라가면 전망이 좋을 것 같은데 위험하니 절대 올라가지 말라는 선두대장님의 경고도 있고 시간도 없고 하여 등정을 포기했다. 나야 약골이니 당연하지만 강대장이나 배고문님은 좀 아쉬웠을 것 같다.

 

사과 한쪽씩 나누어 먹고 다시 출발하는데 바위를 내려오는 것이 난감했다. 곧 부러질 것 같은 가냘픈 나무에 빨간 밴드를 묶어놓아 이것을 잡고 나뭇가지를 밟고 내려오는데 다리가 짧아 발이 땅에 닿지를 않는다. 가랑이를 있는 데로 찢고 발끝을 세워 간신히 내려오니 발가락에 쥐가 다 난다.

 

 

2시가 되어서야 전망이 트인 바위에서 점심을 먹는데 돌아앉는 것도 귀찮아 강대장이나 유고문 처제가 가져온 맛있는 음식을 마다하고 된장국에 밥 말아 개밥 먹듯이 했다.

이때 벌서 선두는 묘봉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중이고 중간도 북가치에 도착했다고 무전이 오니 우리가 많이 늦은 셈이다.


점심 먹고 나서는 모두 단독산행이었다. 산 잘 타는 배고문님은 의리도 없게 뒤도 안돌아 보고 가버리지, 강대장도 늦었다고 하면서 앞서가지,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따라가고, 유고문님은 처제를 케어 하느라 뒤로 처지니 결국 단독산행이 되어 버렸다.

 


 

어느 고개를 올라오는데 드디어 허벅지에 통증이 온다. 쥐가 난 것도 아니고 심하게 저린 것 같은데, 올라가는 것은 몇 발자국도 힘들고 다행히 내려갈 때는 괜찮다. 사람 없을 때 바지를 홀라당 내리고 파스겔을 잔뜩 발랐다. 그 위에 스프레이도 흠뻑 뿌렸지만 앞으로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얼마가지 않아 묘봉이 올려다 보이는 바위에서 강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유고문 일행이 올 때 까지 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강대장이 너무 늦었으니 여적암 까지 택시를 올려 보내 주고 뒷풀이도 정리하라고 무전으로 연락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북가치에서 여적암까지는 길이 험하지 않아 달리듯이 내려왔다. 여적암에서 콜택시를 타고 주차장에 오니 많은 산우들이 반가이 맞아주고 다행이 뒤풀이도 끝나지 않아 고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오늘 처음 참여한 삐순이님은 원래 산행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오늘 보니 완전 선두 구룹에 속하여 나하고 친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보다 조금 나은 에쉴리님은 오늘 산행 잘 했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그래도 산행하면서 택시는 안탄다.”고 놀린다. 당분간 택시 타고 산행한 사람 소리 듣겠다.


오전 9시30분에 시작하여 오후 5시 30분에 끝났으니 장장 8시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집에 와서 몸무게를 재니 2kg이나 빠졌고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해서 인지 온몸이 아프다.

처음 오신 유고문 처제님 몸살 나지 않았는지 염려스럽다.

오늘 같은 산행이 힘은 들었지만 야생을 느낄 수 있고 모험을 즐길 수 있는 진짜 등산이 아닐까 싶다.

같이한 산우님들 너무 늦어 미안하고 끝까지 케어해주신 강대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흐르는 곡은 피터 파운틴이 연주하는 Born to Los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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