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 - 네발로 기어가는
달마산-네발로 기어가는
전라도 땅 끝에 이런 산이 있을 줄 상상을 못했다.
달마(達磨)하면 둥그런 얼굴에 온화한 달마대사가 연상되는데
이제부터는 삐쭉 빼족하고 사나운 달마산이 생각날 것 같다.
임도를 지날 때 산사태라도 난 것 같은 너덜이 심상치 않더니
산기슭 오솔길 끝나는 지점에 오니
무너져 내린 바위 위로 떡하니 밧줄이 걸쳐있다.
모두들 스틱을 접기에 나도 따라 접고
고장 난 어께가 걱정스럽긴 하지만
로프를 잡고 기어올랐다.
사진:곰순이님 작
가까스로 능선에 오르니 바람이 차갑다.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정신을 차려보니
올 겨울 들어 모처럼 청명한 날씨에
다도해 정경이 한 폭의 그림이다.
사진:곰순이님 작
죠스의 이빨 같이 뾰쪽뾰쪽한 능선을
밧줄 잡고 올라가고 네발로 기어가고
궁둥이로 비비며 내려가면서도
왼쪽을 보면 완도가 아름답고
오른쪽을 보면 송지 들판이 그림 같다.
사진"곰순이님 작
모두들 가져온 점심이 진수성찬인데
나는 배낭 무겁다고 달랑 컵라면 하나이니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어디 숨어서 혼자 먹어야 할까보다.
지나가는 나에게 강대장님이 김밥을 싸서준다.
자상하기도 하시지--
사진"곰순이님 작
달마산 정상인 불썬봉(이름도 요상하다)을 향해 가는데
선두는 빨리 가버리고 후미는 아직 오지 않고
나는 가운데서 그만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정상에는 표지석이 안보이고 돌탑만 을씨년스럽다.
폰카로 사진을 부탁하니
구도 잡는다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서 찍었는데
내가 돌탑에 갇힌 것인가? 박힌 것인가?
태백산님 사진을 보니 표지석이 있긴 있는데
나는 왜 못 보았는지 알 수 없다.
사진:태백산님 작
미황사로 바로 갈까하다
원래 계획대로 문바위재로 향하는데
어찌 길이 미황사 반대쪽이라 좀 불안하다.
한참 내려가다 오른쪽에 소로가 있어 혹시나 하고 올라가니
전망 좋은 봉우리일 뿐이고 하산 길은 아니어서
마침 올라 온 단독산꾼에게 길을 묻고
내친 김에 사진도 한 장 부탁했다.
다시 계단도 내려오고, 로프도 매달리고 또 네발로 기면서
아마도 사자봉 아래쯤에서 숨을 돌리는데
아까 단독산꾼이 올라오면서
미황사는 요 아래 계단 오르기 전에 오른쪽으로 가란다.
큰일 났다 싶어 허겁지겁 오던 길을 되짚어 내려오니
못 보았던 바위굴이 나오고 다음은 낭떠러지 같은 하산 길이다.
사진:태백산님 작
미황사에 도착하니 마침 우리 일행들이 사진을 찍고 있어
나도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사진:아모르님 작
미황사 대웅전은 단청하지 않은 것이 특이하여
폰카에 담았더니
한편의 수묵화(水墨畵) 같다.
미황사 뒤편의 달마산 능선이
무채색(無彩色)의 사찰과 조화롭다.
상경 길에 들린 보해매화농원에서
같은 둥지인데 빨간 꽃망울이 신기하여
폰카에 담아봤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꽃밭을 기대하고 갔다가
크게 실망했는데
다른 분들이 올린 사진을 보니
영화 속 한 장면이다.
같은 꽃인데 보는 이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니!
사진은 역시 심미안(審美眼)이다.
무식한 내 눈이 부끄러울 뿐이다.
2010. 03. 18.에